Computer science is no more about computers than astronomy is about telescopes. - Edsger W. Dijkstra
당신의 시대에 가장 많은 노동자가 짤렸고 가장 많은 노동자가 구속됐고 가장 많은 노동자가 비정규직이 됐고 그리고 가장 많은 노동자가 죽었습니다. 차라리 군사독재 시절엔 대드는 노동자만 짤렸으나 당신의 시대엔 남녀노소가 짤렸습니다. 서민의 벗이었던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으나 부자와 빈자의 간극은 훨씬 더 까마득해졌습니다. – 한진중공업 해고자 김진숙
노동자들이 몇만 명이나 모였으니 뭐라도 종이에 써야 하지 않느냐? 그래서 노동자들이 평소에 제일 많이 불만스러워하던 것을 구호로 쓰자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수많은 노동자가 모이는 자리에서 무슨 구호를 제일 앞에 내걸었을까요? (중략) 몇만 명의 울산 노동자들이 쓴 구호 1번은 ‘두발 자유화’ 였어요. 그럼 2번은 뭐였겠어요? 아, 두발 자유화 다음에는 당연히 ‘복장 자유화’ 아닙니까? – 한홍구, 지금 이 순간의 역사, 149p
연극 “6.25 전쟁과 이승만”에서 ‘영웅 이승만’은 공산주의자들을 ‘세균’이라 칭했다. 그는 “빨갱이들이 서울 경무대를 휘저었다고 생각하니 아무리 쓸고 닦아도 기분이 나빠 마루 틈새까지 소독해야겠어요”라고 말하는 프란체스카 여사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세균은 마루 틈새가 아니라 벌써 어떤 사람들 머릿속부터 침투했을 거요. 이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이 세균은 죽지 않고 살아남아 있을 거요.” – 변진경, 6/25/2010 시사 IN
저는 아이들에게 스스로 규칙을 정하게 한다면 아이들은 어른들이 놀라울 정도로 절제된 훌륭한 규칙을 정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새장 안의 새를 풀어주면 처음에는 새장을 벗어났다가 금방 새장으로 돌아옵니다. 아직까지 새장이 익숙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결국에는 하늘 높이 비상합니다. 저는 아이들을 믿습니다. 또한 이러한 작업은 민주주의를 학습하는 매우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 곽노현
‘디자인 서울, 그저 웃지요’, ‘서울이 좋은지는 우리가 판단할게요’, ‘와! 서울이 서울랜드가 되었어요!’, ‘한강에 나무 좀 그만 뽑으세요, 그늘이 하나도 없어요’ ‘진짜 우리 문화는 치워버리고 어디서 이상한 것만 주워다 놨어요’, ‘서울은 365일 공사중’, ‘서울사람은 고향이 없어요, 디자인됐으니까요’ 등이 서울시 홍보 포스터 속 ‘서울이 좋아요’를 대신해 그 자리에 들어간 문구다. 사람들이 보내온 문구는 지금 서울에 대한 진짜 생각이 그대로 드러난다. - 한겨레, ‘디자인 서울’을 다시 디자인하라
이제 부디 아이들에게 두려움을 가르치지 맙시다. 두려움은 우리 몸마음을 성장시킬 에너지 통로를 막아버려요. 무엇보다도 자신의 인권을 지킬 목소리를 내는 법을 배우지 못하는 아이들은 깨어있는 시민이 아닌 잠든 시민이 되어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만든답니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어요. - Link
위계적인 조직일수록 소통은 막혀있기 마련이다. 이런 경직된 소통구조 속에서 창의력이 꽃 피기를 바라는 것은 '우린 왜 못 만드냐'는 질문만큼이나 어리석다. 그런 질문이 가능하다는 것은 그 조직이 창의적인 제품을 만들 수 없을만큼 위계적이고 경직되어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이게 두 번째 답이다. (중략) 하지만 어쩌나. 스티브 잡스는 한국 정부가 그렇게 없애고 싶어하는 두 골칫거리의 산물이니 말이다. 바로 '인문학'과 '노는 시간'이다. - Link
지난달 말 서울대 인문대 게시판에는 인문대 학생회 명의의 대자보가 게시됐다. 지난달 8일 ‘삶과 인문학’이라는 인문대 수업의 첫 강연자로 나선 건설업체 대표가 “기업에 필요한 돈을 빌리는 접대자리에서 수치 얘기를 하는 것보다 인문학이나 예술을 전공한 직원이 노래나 한 곡 불러주는 편이 훨씬 효과가 좋다”, “토익 900점 미만은 이력서 쓸 생각도 하지 마라” 등의 발언을 한 것에 대한 항의의 메시지가 담겼다. - Link
그래도 바보가 남긴 유산은 덕수궁 앞 분향소에 소복이 쌓였다. 방명록에는 어떤 아주머니가 눈물로 썼다는 글귀가 남아있는데, 그리 대단치도 않은 말이었다. "앞으로 자식교육 똑바로 시키겠습니다." 쌔빠지게 달려온 대한민국 사람들에게는 꽤 오랫동안 잊혀졌던 말이었다. 나만 잘 먹고 살면 그만인 자식들이 아니라 똑바른 자식들이다. - 대한민국은 왜 대통령다운 대통령을 가질 수 없는가? 박성래.
We can never forget that everything Hitler did in Germany was "legal" and everything the Hungarian freedom fighters did in Hungary was "illegal." - Martin Luther King
서울서체는, 굳이 따지자면 '오늘'에 더 집중하고, 그래서 '옛날'의 느낌이 별로 나지 않는 타입페이스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 결과물은 전통과 현대를 동시에 보여준다기보다는 차라리 어느 날 갑자기 울쑥불쑥 솟아오르는 새 건물과 새 시설들이 주는 총체적인 인상을 대변하고 있다고 말하는 게 더 정직한 거 같습니다. - 김어진, 엽토군의 폰트감상문
캠릿브지 대학의 연결구과에 따르면, 한 단어 안에서 글자가 어떤 순서로 배되열어 있는가 하것는은 중하요지 않고, 첫째번와 마지막 글자가 올바른 위치에 있것는이 중하요다고 한다. 나머지 글들자은 완전히 엉진창망의 순서로 되어 있지을라도 당신은 아무 문없제이 이것을 읽을 수 있다. 왜하냐면 인간의 두뇌는 모든 글자를 하나 하나 읽것는이 아니라 단어 하나를 전체로 인하식기 때이문다.
사관은 종7품에서 종9품 사이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공무원제도에 비교를 해보면 아무리 높아도 사무관을 넘지 않습니다. 그러한 사람이 왕을 사사건건 따라 다니며 다 적습니다. 이걸 500년을 적는데, 어떻게 했냐면 한문으로 써야 하니까 막 흘려 썼을 것 아닙니까? 그날 저녁에 집에 와서 정서를 했습니다. 이걸 사초라고 합니다. 그러다가 왕이 돌아가시면 한 달 이내, 이것이 중요합니다. 한 달 이내에 요새 말로 하면 왕조실록 편찬위원회를 구성합니다. 사관도 잘못 쓸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영의정, 이러한 말 한 사실이 있소? 이러한 행동한 적이 있소?’ 확인합니다. 그렇게 해서 즉시 출판합니다. 4부를 출판했습니다. 4부를 찍기 위해서 목판활자, 나중에는 금속활자본을 만들었습니다. 여러분, 4부를 찍기 위해서 활자본을 만드는 것이 경제적입니까, 사람이 쓰는 것이 경제적입니까? 쓰는 게 경제적이지요. 그런데 왜 활판인쇄를 했느냐면 사람이 쓰면 글자 하나 빼먹을 수 있습니다. 글자 하나 잘못 쓸 수 있습니다. 하나 더 쓸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후손들에게 4부를 남겨주는데 사람이 쓰면 4부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면 후손들이 어느 것이 정본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목판활자, 금속활자본을 만든 이유는 틀리더라도 똑같이 틀려라, 그래서 활자본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500년 분량을 남겨주었습니다.
여기에는 밀률(密率)이라는 말도 나옵니다. 비밀할 때 密, 비율 할 때 率. 밀률의 값은 3으로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고려시대의 수학교과서를 보면 밀률의 값은 3.14로 한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아까 이순지의 칠정산외편, 달력을 계산해 낸 그 책에 보면 ‘밀률의 값은 3.14159로 한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다 그거 삼국시대에 했습니다. 밀률은 영원히 비밀스런 비율이라는 뜻입니다. 오늘 컴퓨터를 π를 계산해 보면 소수점 아래 1조자리까지 계산해도 무한소수입니다. 그러니까 무한소수라고 하는 영원히 비밀스런 비율이라는 이 말은 철저하게 맞는 말입니다.
여러분 1,400년대 그 당시에 자기 지역에 맞는 달력을 계산할 수 있고 일식을 예측할 수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 세 나라밖에 없었다고 과학사가들은 말합니다. 하나는 아라비아, 하나는 중국, 하나는 조선입니다. 그런데 이순지가 이렇게 정교한 달력을 만들 때 달력을 만든 핵심기술이 어디 있냐면 지구가 태양을 도는 시간을 얼마나 정교하게 계산해 내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칠정산외편’에 보면 이순지는 지구가 태양을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365일 5시간 48분 45초라고 계산해 놓았습니다. 오늘날 물리학적인 계산은 365일 5시간 48분 46초입니다. 1초 차이가 나게 1400년대에 계산을 해냈습니다. 여러분, 그 정도면 괜찮지 않습니까? - 허성도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의 강연 녹취록
솔까 자기가 한게 그렇게 대단한거면 남한테 당장 인정받길 원하지 말고 그걸로 사업해. 그래서 성공하면 세상 사람들이 다 알아줄 거임. 그 기술로 회사차려. 그렇게 대단한거면 다들 그 기술 못써서 난리겠지. 그렇지 않다는건 남들도 할 수 있거나 그렇게까지 유용한건 아니라는 얘기 아냐? 그래서 돈벌면 모든게 해결될 거임. 온실 안에 있길 원하면 눈치보고 사회생활 해야하는게 인지상정인걸 아직 모르면 어쩌나 그래.
"이 학교가 어떻게 명문이 된지 압니까? 간단해요. 아이들 새벽에 불러서 밤늦게 보냈어요. 아침에 지각하는 아이들 교문에서 몇 대 패고, 교실에서 담임이 또 패고, 공부시간에 졸면 또 패고…. 사실 90년대 후반까지 다 그렇게 해서 대학 보냈어요. 학부모들도 일단 대학에만 보내면 아이들 때리든 말든 크게 상관하지 않았죠. 솔직히, 안 때리면 학교 교육이 가능하겠어요? 안 때리고, 두발 자율화해서 대학 진학률 떨어지면 학부모들이 '우리 아이 패 주세요!' 할 겁니다. 한 번 두고 보세요." - 오마이뉴스
Power tends to corrupt and absolute power corrupts absolutely. - Lord Acton
사망자의 절반 가량은 거의 한순간에, 단 한 곳에서 나왔다. 스미다가와 동쪽 가까이에 있는 옛 육군 피복공장터에서이다. 첫 격진이 있은 직후 시내 각처에 일제히 불길이 치솟았다. 오후가 깊어지자 스미다가와를 따라 여기저기에서 회오리바람이 일었는데, 목격자의 말에 따르면 가장 큰 것은 당시 강동(江東)에서는 단연 최대의 건물이었던 고쿠기칸(國技館) 부근 일대를 뒤덮은 것으로 수백 미터의 높이에 달했다고 한다. 불기둥은 피복공장터로 내려와, 불에 휩싸인 시타마치를 피하여 이곳에 모여 있던 사람들을 덮쳐서 삼만 명 이상의 사상자를 낸 것이다. - 도쿄이야기, E.사이덴스티커, 이산
<벽돌깨기>는 컬러 게임이지만 당시 국내에서는 흑백TV를 이용했기 때문에 흑백게임으로 보였다. 그렇지만 당시 우리나라의 오락실과 문방구 앞에 있는 게임은 컬러였다. 어찌된 일일까? 실은 브라운관 화면에 색깔 있는 셀로판비닐을 붙였다. 얼핏 보기에는 마치 빨간 벽돌, 파란 벽돌로 보이는 효과가 있었다.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흑백 TV의 게임이 컬러로 변신하는 방법을 우리나라 오락실 주인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 김중태, 대한민국 IT史 100
전길남 박사는 박정희 정권의 해외 과학자 유치 사업 때 가장 먼저 귀국한 과학자 중 한 명이다. 그는 한국을 세계에서 두 번째 인터넷 국가로 만들면서 세계를 놀라게 했다. 박사는 한국의 인터넷 발전을 위해 박사 과정의 제자들을 험난한 사업가의 길로 유도했다. 대한민국 최초의 인터넷 전문회사인 아이넷을 창업하고, 현재 인터넷기업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허진호 박사가 전길남 박사의 제자다. 넥슨의 김정주 대표도 박사의 조언에 따라 박사 과정을 접고 사업가로 나서 성공한 사례다. 복잡한 인터넷 접속을 한 번의 클릭으로 가능하게 해 주는 서비스인 네오위즈의 원클릭 서비스를 만든 나성균 사장과 박진환 사장은 넥슨의 웹에이전시사업부에서 일하던 직원이었다. 김정주 대표와 송재경 씨, 박현제 솔빛미디어 대표, 정철 삼보컴퓨터 대표 등도 박사의 SA랩에서 성장한 제자다. 이렇게 대한민국을 인터넷 강국으로 만든 박사지만 한국 인터넷 20주년 행사도 치르지 못했고, 정년퇴직 때도 불러주는 곳이 없었다. 정작 일본에서 인터넷을 가르쳐준 박사에 대한 보답으로 게이오 대학 부총장으로 모셔갔다. - 김중태, 대한민국 IT史
1994년부터 본격적으로 웹이 국내에 알려지면서 1995년부터는 웹에이전시라고 부르는 웹페이지 구축 업체들이 출현하기 시작했고 몇 년에 걸쳐 많은 전설을 남겼다. 지금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회사 소개 페이지도 몇천만 원을 받는 것은 기본이었다. "어떤 사이트에 갔더니 팝업 창이라는 것이 뜨던데, 우리도 그렇게 만들어 달라"는 고객 주문에 의해 팝업 창 하나 띄워주고 500만 원을 받았다는 전설이 만들어지는 시기였다. 당시 주요 웹사이트 구축업체로는 다음커뮤니케이션, 아이소프트, 인터넷코리아, 파워넷, 2&5, 이미지네트, 브라이트시스템즈 등이 있었다. - 김중태, 대한민국 IT史
웹툰의 성공요소는 기존의 만화와는 다른 '파격' 이다. 만화공장이나 유명작가의 문하생으로 충분한 실력을 익힌 다음에 데뷔했던 '대본소 만화가'와 달리 웹툰작가는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의 만화를 대중에게 선보였다. 누구나 자기 홈페이지나 커뮤니티 게시판에 만화를 올릴 수 있다. 때문에 정부의 심의를 받고 출간되는 대본소 만화와 달리 사전 심의가 없었다. 심의가 없기 때문에 상상력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 기존 만화에서 사용하던 칸의 구분도 명확하지 않았고 캐릭터도 엽기적이며 소재와 줄거리는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모든 웹툰 작가들이 성공할 수는 없지만 기존의 질서를 깬 웹툰이기에 재능 있는 작가들이 등장할 가능성은 더 높아졌다. 적어도 작가로 등단하고 싶어도 선배의 눈치를 보느라고 등단할 수 없던 대본소 만화 시절의 제약은 사라진 것이다. - 김중태, 대한민국 IT史 100
(카이스트-포항공대) 해킹 사건의 주역으로 감옥까지 다녀온 노정석 씨는 컴퓨토 동아리에 들어간 후 해킹 기술에 빠지면서 학교에서는 학사경고를 두 차례나 받을 정도로 학업이 뒤처진다. 그는 보안업체인 인젠 창업에 창여해 해커를 잡는 일을 했으나 일이 재미없다는 이유로 회사를 떠난다. 이후 블로그 프로그램인 태터툴즈의 정재훈 씨와 의기투합해 태터앤컴퍼니를 창립한다. 태터앤컴퍼니는 포털 다음과 함께 티스토리라는 블로그 서비스를 만들어 국내 20위 안의 사이트가 된다. - 김중태, 대한민국 IT史 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