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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궁궐의 안내판이 바뀐 사연, 아름지기, 안그라픽스
    • 궁궐의 모습을 본뜬 커다란 종합안내판은 궁궐 정면에 세워져 경관을 가리고 있었고, 개개의 건축물 안내판은 통일되지 않은 디자인으로 산만하게 여기저기 서 있었으며, 이 밖에도 건축물의 내부 구조를 보여 주는 안내판과 각양각색의 길찾기안내판, 관리·운영상 필요한 안내판들이 조잡한 디자인으로 일관성 없이 난립해 있었다.
      잘못 디자인된 안내판은 관람자를 오류에 빠지게 할 위험이 있다. 궁궐 입구에 서 있던 예전 안내판을 예로 들어보자. 기와 모양의 지붕이 얹혀 있던 커다란 안내판을 기억할 것이다. 궁궐뿐만 아니라 주요 사찰이나 역사유적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형식으로 안내판은 물론 주변 이용시설이나 부속 건물에도 이런 디자인이 종종 도입되었다. 이들은 역사유적과 비슷한 모양을 취해서 잘 어울리게 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러한 모방은 그 진정성의 진위 여부를 떠나 인식에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외국인이 우리의 궁궐을 방문해서 기와를 얹은 안내판이나 화장실을 보았다고 하자. 그 외국인은 이것이 현대에 새로 만든 것인지, 아니면 궁궐이 지어진 그 시대에 만든 것을 기능적으로 재활용한 것인지 구분하지 못해서 혼란에 빠질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과거의 건축물이나 구조물이 고유의 형태를 지니는 것은 당시의 기능과 문화적 의미를 함축한 것이지만, 현대에 사용되는 안내판이 그 형태를 따르는 것은 의미 없는 모방일 뿐이며 혼란만 가중시킨다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문화유적의 환경과 어울리는 시설물을 만든다는 구실 아래 오히려 문화유적의 위상을 깎아 내리는 일이며, 문화유적의 원형이 지니는 공간의 텍스트를 읽는 데도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최근에는 문화유적에 설치하는 현대적인 시설물의 디자인 원칙을 '주위 환경과 어울리게 하되 실제 유적과 명확히 구분되는 재료 또는 형태로 디자인하며, 역사 유적을 훼손하지 않도록 최소한의 형태로 자신을 낮추는 것'으로[1] 정의하고 있다.
    • 서체는 평범해 보이지만 본보기가 될 수 있는 서체를 사용하기로 했다. 개성이 뚜렷한 서체는 시간이 흐르면 쉽게 질릴 수 있고 궁궐의 격과 어울리지 않을 소지가 많아 뽐내지 않으면서도 기품 있는 서체를 찾아야 했다.
      한글 서체는 에칭 가공 후에도 글자의 뭉개짐이 적고 안내판용으로 두께가 적절한 서체를 우선 선택하였다. 그 가운데 제목용 한글서체는 디자인 방향과 맞고 영문서체와의 어울림을 고려해 윤고딕 540으로[2] 결정하였다. 본문용 한글서체는 두께가 적절한 윤명조 540으로[3] 결정하였다. 이 두 서체는 완성도보다는 서체 두께의 적합함에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
      투바이포에서 처음 제안한 본문용 영문서체는 타임(Time)이었는데,[4] 서구적인 느낌이 다소 강해서 조금 더 부드러운 젠슨(Janson Text 55)이 본문 서체로 채택되었다. 제목용 영문서체는 본문과 기능 면에서 많은 차이가 있어 가독성이 뛰어난 산세리프 계열의 유니버스(Universe 55)를 채택하였다. 유니버스는 자족이 풍부한 서체지만 권역을 표시할 경우 원하는 두께가 없어 유니버스 55를 약간 두껍게 다듬었다.

  • Helvetica - The everyday font
    • 모더니즘의 대표적인 서체인 헬베티카는 궁극의 심플함과 효율성 때문에 그래픽 디자인이 꽃을 피우기 시작한 1960년대 이후 디자이너들의 가장 큰 사랑을 받아왔다. 그 자체로 더 이상 나아질 수 없을만큼 완전한 서체로 평가받기 때문에 이후 모든 타이포그래피는 헬베티카의 변형이거나 헬베티카에 대한 도전이라고 이야기될 정도이다. 헬베티카를 지지하는 일군의 디자이너들은 컨텐츠가 말을 하도록 해야지 그것을 담아내는 포맷인 서체에 너무 많은 표현이 담기는 것을 거부한다.
    • 그러나 한편에선 헬베티카체에서 파시즘과 냉기서린 글로벌리즘을 짚어내기도 한다. 극단적인 효율성을 추구하고 인간이 배제된 잘못된 가치를 전세계에 가장 효과적으로 주입하고 있는 그릇이라는게 헬베티카를 비판하는 디자이너들의 관점이다. 영화에는 심지어 베트남전과 이라크전을 일으킨 사람들이 좋아하는 서체라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등장한다.

  • 엽토군의 폰트감상문 - #4 서울남산체, 서울한강체
    • 서울남산체의 디자인 컨셉 자체가 오히려 정사각형보다는 직사각형의 틀에 어울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컨셉, 글자를 이런 방향으로 도안하겠다는 그 방향성이 다분히 최근의 디자인 경향과 디자인서울의 진취적인 취지 위주로 잡혀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의도와 그 실현은 결과적으로 청년층에서의 폭발적인 인기와 중장년층의 이유 없는 불편함으로 이어진 것이지요.
    • 일반적으로 고딕과 명조를 1벌로 개발한다고 하면, 전자는 표제용으로, 후자는 본문용으로 제작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서울서체는 하나의 모듈과 컨셉을 가지고 딱딱하게 그릴 것이냐, 부드럽게 그릴 것이냐만 구분해 제작한 꼴입니다. 차라리 서울한강체에서만큼은 개성이나 어떤 의도성을 좀 포기하더라도 본문용 서체로 사용될 수 있는 여지를 더 남겨 주었더라면 좋았을 뻔했습니다. 명조체인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헤드라인이나 홍보물의 단문 정도에만 소극적으로 사용되고 있어서, 아예 서울남산체L이 서울한강체의 역할을 대신하기도 합니다.
    • 무엇보다 서울한강체는 세리프와 ㅎ의 열린 부분 등 글자 판독에 있어서 별로 중요치 않은 곳에 괜히 시선을 집중을 시킨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서울서체는, 굳이 따지자면 '오늘'에 더 집중하고, 그래서 '옛날'의 느낌이 별로 나지 않는 타입페이스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 결과물은 전통과 현대를 동시에 보여준다기보다는 차라리 어느 날 갑자기 울쑥불쑥 솟아오르는 새 건물과 새 시설들이 주는 총체적인 인상을 대변하고 있다고 말하는 게 더 정직한 거 같습니다.

References

  1. 933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개최된 제4회 근대건축국제회의(CIAM)의 결론인 아테네 헌장 제70항에서 언급된 것이다
  2. 기존 고딕체의 산만한 느낌을 줄이는 데 중점을 둔 서체다. 세로획과 가로획의 굵기 대비를 주어 안정감을 유지한다.
  3. 무게중심을 상단에 두어 시각선을 명료하게 만들어 줄이 바뀌어도 쉽게 다음 줄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한 서체다. 기존 명조의 획 방향을 최소화해 가독성을 높였다.
  4. <타임>지를 위해 1923년에 고안되었다. 정확한 인쇄와 가독성이 최대한 고려된 세리프체로, 대문자와 소문자의 병기, 작은 글씨의 가독성 등이 세심하게 배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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